배달 라이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첫 인정…1심 뒤집은 항소심 판단
배차·단가 결정권은 회사에…재판부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
배달 플랫폼이 앱과 알고리즘으로 라이더의 배차와 보수를 사실상 정했다면 그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는 배달 라이더 A씨가 배달대행 플랫폼 운영사 B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달 3일 근로자 지위를 부정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첫 법원 판단으로 전해졌다.
A씨는 B사가 운영하는 앱에 접속해 배달 업무를 수행해 왔다. 1심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앱에 접속해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라이더가 독자적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없어 전적으로 플랫폼 앱에 의존하는 점, 회사가 보수 단가와 지급 방식을 일방적으로 정한 점, 배차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권이 라이더에게 없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디지털 기기와 알고리즘을 통한 간접적인 지휘·감독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근로자성을 따질 때 “플랫폼의 알고리즘 또는 복수의 사업 참여자가 관여하는 노무관리의 특성”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별도의 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 근로자성을 일률적으로 부정하기보다 현실에 맞게 근로기준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도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정의한다. 법원은 그동안 계약의 이름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라는 실질을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해 왔다.
‘근로자’의 범위는 법마다 다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임금·급료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규정해 근로기준법보다 넓게 잡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2023년 7월부터 특정 사업에 전속돼 일해야 한다는 요건을 없애고 ‘노무제공자’ 범주를 두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도 배달 업무 종사자가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했다.
세 법 가운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범위가 가장 좁다. 여기에 해당해야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가 제한되고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받을 수 있으며, 해고 30일 전 예고나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 지급을 요구할 수 있다. 부당해고라고 판단한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고 최저임금과 퇴직급여에 관한 법률의 적용 여부도 함께 달라진다.
부당해고 자체에는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면서도 이를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를 처벌하지 않고,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과 이행강제금으로 시정을 강제하는 구조를 두고 있다.
형사처벌이 따르는 지점은 따로 있다. 해고를 미리 예고하지 않은 경우와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벌칙이 적용되고, 근로자로 인정된 뒤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을 정해진 기한까지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 규정이 적용된다.
이번 판단은 특정 계약과 업무 실태를 전제로 한 개별 사건의 결론이다.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 라이더가 모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근로자성은 배차와 보수 결정 구조 등 실질을 따져 사건마다 판단된다.
노동계에서는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 지위를 법으로 추정하는 제도와 배달 건당 최저임금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플랫폼 노동에 관한 입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참고 법령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근로자의 정의)·제2호(사용자의 정의)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해고 등의 제한) 근로기준법 제26조(해고의 예고) 근로기준법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근로기준법 제28조(부당해고등의 구제신청) 근로기준법 제33조(이행강제금) 근로기준법 제36조(금품 청산) 근로기준법 제109조(벌칙 — 금품 청산·임금 지급 위반) 근로기준법 제110조(벌칙 — 해고의 예고 위반) 근로기준법 제111조(벌칙 — 확정된 구제명령 불이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1호(근로자의 정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1조의15(노무제공자 등의 정의) 최저임금법 제3조(적용 범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조(퇴직급여제도의 설정), 제9조(퇴직금의 지급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