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징역 8년’을 ‘8개월’로 읽으면…낭독된 주문이 1심 판단이 된다
재판서와 법정 낭독이 엇갈린 전세보증금 사건…형량을 바로잡는 절차는 항소심 판단
다가구주택 임차인 127명의 보증금 약 144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A씨에게 항소심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 1심에서는 재판서에 적힌 징역 8년과 달리 법정에서 징역 8개월이 주문으로 낭독됐다. A씨 측은 법정에서 낭독된 주문이 재판의 내용이라는 취지로 재판서 경정을 신청했고, 1심 형은 징역 8개월로 정리됐다. 검사는 이에 항소했다.
항소심은 원심을 깨고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2명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6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자료에 따르면 A씨 등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다가구주택 임차인들을 상대로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A씨는 다른 이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 중개 업무를 하고, 담보대출 중개와 초기 자금 마련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은 다수 임차인으로부터 약 144억원을 편취한 혐의의 사안이라며 죄책이 무겁다고 봤다. A씨가 범행을 기획·주도했음에도 자신의 역할이 보조적이었다고 주장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도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재판서보다 법정에서 낭독된 주문이 먼저 효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은 재판장이 판결서를 바탕으로 선고하면서 주문을 낭독하도록 정한다. 판례도 공판정에서 선고된 내용이 판결의 내용이 되며, 이미 선고된 판결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경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형사소송규칙상 재판서 경정은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처럼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는 절차다. 선고가 끝난 뒤 ‘8개월’로 낭독된 주문을 재판서의 ‘8년’에 맞추어 바꾸는 것은 형량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일이다. 이 사건에서 1심 형량을 바로잡는 절차가 항소로 이어진 이유다.
피해액이 약 144억원인데도 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곧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가중처벌하고,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정한다.
다만 판례는 여러 죄가 경합범으로 처벌되는 경우 각 죄의 이득액을 합산해 이 법의 기준을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임차인별 계약과 보증금 편취가 별개의 사기죄로 평가된다면, 합계 144억원만으로 이를 하나의 144억원 사기처럼 계산할 수는 없다. 보도 자료에는 임차인별 보증금과 적용 법조가 모두 공개되지 않아, 합계액만으로 이 사건의 법률 적용을 단정할 수 없다.
별개의 사기죄가 경합범으로 인정되면 형법은 가장 무거운 죄의 장기에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사건의 행위 시기인 2021년부터 2023년에는 사기죄의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사기죄 법정형은 2025년 12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높아졌지만,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당시 법률에 따른다는 원칙상 이 사건에 새 법정형을 적용할 수는 없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 사용한 정황은 사기 혐의와 별도로 공인중개사법상 쟁점이 될 수 있다. 같은 법은 자격증의 양도·대여와 대여받은 자격증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다만 보도 자료만으로 이 부분의 기소 여부나 재판 판단까지 확인되지는 않는다.
이번 사례는 피해 규모가 크더라도 피해자별 범죄의 구조와 경합범 규정에 따라 법정형의 계산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선고에서 잘못 낭독된 형량은 재판서의 문구만 고쳐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상소 절차에서 다시 판단받게 된다는 점도 확인했다.
참고 법령
- 형법 제1조 제1항, 제37조, 제38조 제1항 제2호, 제347조
-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 형사소송법 제43조
- 형사소송규칙 제25조
- 공인중개사법 제7조 제1항·제2항, 제49조 제1항 제1호